간암투병 중 사망한 독거노인 어려운 이웃 위해 40만원 남기고 떠나

서구, 금년 7월 이후 여섯 번째 공영장례 치뤄

뉴스24 | 입력 : 2014/12/14 [13:45]
광주 서구(구청장 임우진)는 지난 12일(금) 광주보람장례식장에서 금년 7월 이후 여섯번째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치렀다. 서구에서 실시하는 공영장례는 동네에서 함께 생활하던 분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마을 장례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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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병원 치료를 거부하던 최 씨가 발병 1년 만에 입원했다. 발견 당시 최 씨는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온몸으로 간과 담낭 등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며칠을 살지 모르는 최 씨는 찾아오는 이 없이 창가로 머리를 향한채 누워 영원히 잠들 생각이었다. 그런 최 씨가 생각을 바꾸었다. 병원 입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한가족버팀목사업’으로 홀몸노인에게 방문서비스를 제공하던 이순자(56세)씨와 첫 만남은 최 씨가 3일을 굶은 날이다. 지난해 위암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치료를 거부한 체 창문을 등지고 앉은 최 씨는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주라”는 말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타는 듯한 속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후 이씨는 매일 최 씨의 집을 방문했다. 주말도 쉬지 않았다. 식사를 못하는 최 씨에게 죽을 쑤어드리기 위해서다.
 
최 씨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1,500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에 20년이 넘게 살았지만 최 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후 생긴 습관일 수 있다. 최 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없는 듯이 75년을 살아왔다.
 
그가 사회시스템에 몸과 의지를 맡겼다. 최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고 미안하다“였다. 허약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혈변을 싸버린 자신의 방을 정리하는 손길에 감사했다. 매일 찾아와 안부를 묻고 죽을 써주었던 따듯함에 감사했다.  그리고 15일후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노인연금 20만원에 생계급여 28만원을 더해 48만원으로 한달 살림을 꾸렸다. 아파트관리비와 공과금을 이체하고 남은 40만원으로 약값과 음식 값을 치렀다. 이끼고 아껴서 생활하던 최 씨가 병원입원전 가진 돈은 60만원이 전부였다. 병원에서 권하는 영양제마저 거부하던 최 씨가 마지막에 사용한 비용은 20만원이다. 쪼들어 볼품없는 몸을 싯어 주던 손길에 사례하고 새 속옷으로 새 이불 새 배개가 놓인 병원침대에 눕기 위해서다. 그는 새 이불 속에서 두번의 밤을 보내고 떠나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결단을 했다. 어려운 이웃 분들을 위해 드리고 싶다며 40만원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의 사후 장례는 금호1동장에게 부탁했다.
 
최 씨가 집에서 문을 잠그고 스스로 사라지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서구에서 시행하는 장수노트 사업때문이다. 장수노트는 노인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후 연락할 사람과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한다. 방문서비스 제공자는 서비스와 노인의 변화 상태를 남긴다.
 
서구는 지난 7월부터 고독사 예방을 위해 장수노트 1,000권을 작성했다. 최 씨는 지난 9월 24일 한가족버팀목 도우미와 함께 장수노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남은 금액이 있다면 금호1동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드리고 싶습니다”고 기록했다. 이날 최 씨는 금호1동장에게 자신의 장례를 위탁하기 위해 '공영장례지원신청'을 작성했다. 노트에는 최 씨에게 제공된 서비스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서구에서 시행하는 공영장례사업은 연고가 없이 홀로 생활하는 분들을 위한 마을 장례사업이다. 지난 12일 광주보람병원에서 만난 금호1동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윤영복 씨(48세)는 금년에 세번째로 상주가 되었다. 금호1동에서는 홀몸노인이 돌아가시면 사망자 이름으로 장례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장례절차를 상의하고 고인의 종교에 따라 의례를 준비한 후 조문객을 맞이하고 화장과 안치까지 장례의례를 주관했다.
 
그는 공영장례사업을 '믿음을 주는 것'이라 한다. 그는 세 번의 장례식에서 그 믿음을 확인했다. 7월에 실시된 첫 장례식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학생 딸을 두고 간 한부모 가정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 생활하는 중학생이 길 건너에서 달려와 반가이 건내는 인사가 그가 말하는 첫번째 증거다. 두번째는 증거로 지난 7일 서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금호1동을 집 같은 곳’으로 소개하는 글이다. 게시된 글은 “장애가 있는 자신을 대신해 눈바람을 맞으며 홀로가신 고모의 영정사진을 꼭 끌어안고 화장장으로 향하셨던 동장님 모습을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증거는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주고 간 최씨다.
 
장례에 함께한 이호준 동장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지켜봐주고 있다는 믿음이 마지막 걸음을 앞둔 최씨의 마음을 열게 했다"며 "엄마의 품같은 복지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봉사자 이순자씨는 최 씨가 남기고간 쌍가락지를 금호1동 동복지협의체에 기부했다. “남편과 상의 끝에 가신 분의 마음이 더 넓은 곳으로 흘려보내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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