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칼럼]추사, 황상을 그리워하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뉴스24 | 입력 : 2014/11/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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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 하다가 서류 파일에서 글씨 한 장을 찾았다. 자세히 보니 몇 해 전에 강진군 다산 유물전시관에서 열린 <다산 유물특별전>에서 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오언시이다.

황 늙은이에게                            寄黃叟


이별의 슬픔이 너무나 커서                別哀千萬萬
문 밖에 나가 배웅하지도 못하였네.        不忍出門看
오늘 당신과 헤어진 시간을 헤아려 보니    今日計君去
이미 월출산을 넘어 갔네.                 應過月出山

71세의 추사, 과천에서                    七十一果
                                  
이 시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두 아우 명희, 상희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제자 치원 巵園 황상(黃裳 1788-1863?)에게 보낸 7편의 글 중의 하나이다.
 
시의 끝머리에 ‘칠십일과(七十一果)’라고 적혀 있다. 칠십일과 (七十一果)라는 호는 그의 나이인 칠십일 七十一과 그가 살았던 경기도 과천 果川의 첫 글자인 과 果자를 합한 것이다. 추사가 죽기 3일전에 썼다는 봉은사 판전의 호 또한 칠십일과 병중작 (七十一果 病中作)이다. 그리고 보니 이 시는 추사가 별세한 해인 1856년에 쓴 것이다.
 
1856년에 황상은 과천에 있는 추사를 문안한 듯하다. 1856년이면 다산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황상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치러진 다산 10주기에 참석하였듯이 20주기에도 다산생가를 간 것 같다. 그리고  남도에서 천리 길 되는 경기도를 오랜만에 간 김에 과천에 사는 추사도 찾아갔으리라.
 
황상을 만난 추사 김정희의 감회는 유별났던 것 같다. 황상은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과 정학유 집안과 정황계 丁黃契를 맺을 정도로 다산 집안과 교분이 두터웠고, 추사와 다산의 큰 아들 정학연과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였으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71세의 추사와 69세의 황상. 두 늙은이는 오랜만에 서로 만나 깊은  회포를 풀었으리라. 그리고 서로  헤어지지 싫었으리라.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추사는 치원 巵園과 헤어질 때  이별의 슬픔이 너무 컸다. 문 밖에 나가 배웅하지도 못하였다.  방안에서 헤어진 시간을 곰곰이 헤아려 보니 너무나 오래된 것 같아 다시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추사는 ‘오늘 당신과 헤어진 시간을 헤아려 보니 이미 월출산을 넘어 갔네’ 라고 쓰고 있다.  여기에서 월출산은 실제로 영암 월출산 일 수도 있고  달이 산을 넘듯이 오랜 세월 일 수도 있다.
 
이 시에는 말년에 힘들게 산 추사 노인의 외로움이 흠씬 배어 있다. 한편으로는 황상에 대한 그리움이 잔잔히 녹아 있다. 

아전 출신 황상은 15세의 나이에 다산의 제자가 되었다. 1802년에  다산 정약용은 강진 동문 밖 주막에서 살고 있었다. 황상은 자신이 둔하고, 꽉 막혔고 미욱함을 다산에게 토로하였다. 다산은 빨리 외우고, 글 잘 짓고, 이해가 빠르면 공부에 소홀하고 자만하니, 둔하고 막히고 미욱함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하였다.
 
다산은 황상에게 ‘부지런히 하고 또 부지런히 하라’고 하면서 ‘마음 가짐을 확고히 할 것’을 공부법의 근본으로 하라고 가르쳤다.  황상은 이러한 다산의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고 쉼 없이 노력하였다.

9월말에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를 찾았다. 실학박물관도 구경하였 다. 마침 ‘유배지의 제자들 – 다산학단’ 특별전을 하였다. 여기에서 ‘치원총서 巵園叢書’를 보았다. 이것이 바로 황상의 공부 결정판이었다. 
 
황상은 평생 책을 베껴 적는 초서 작업을 하였단다. 경세 · 문학 등 모든 분야의 책들은 매일 베끼고 옮겨 적었다 한다. 그의 집에는 초서하여 쌓아둔 책이 많았는데 그 높이가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쌓아둔 책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개미집 같다니 부적 같으니 하면서 놀리기도 하였다.

꽉 막힌 황상은 이렇게 노력하여 당대의 시인이 되었다. 미치고 미쳐서 일가 一家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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