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성지역의 한말의병과 3. 1운동

취재본부 | 입력 : 2012/09/07 [08:09]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쟁취하려는 근대사의 서막인 동학농민혁명을 무력으로 짓밟고 노골적인 침략을 자행한 일제침략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것이 한말의병항쟁이었다.

한말의병의 중심인 호남의병에서 장성지역은 그 핵이었으니 동학농민혁명의 잔여세력이 전개한 무장. 흥덕. 고창을 휩쓴 영학당 운동을 삼계면 자초리출신인 이화삼과 이사유 등이 주도하였으며 이들은 그후 영학당서당을 설치해 한말의병에 앞장섰다. 1차의병을 주도한 기우만. 기삼연 등의 호남의병과 수연산에서 기병한 호남창의회맹소의 기삼연 등이 3차 호남의병을 주도했다.

장성지역은 전남. 북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의병활동이 산간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게릴라전이기 때문에 호남의병의 요충이 되었던 것이다.

한말의병에서 가장 격렬했던 3차의병에서 호남의병은 전국의 60.1%을 차지했고 호남전역이 의병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에 일제침략들은 이들을 없애기 위해 남한대토벌작전을 전개한 후에 한국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호남인들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과 한말의병을 진압한 총칼로 무단정치를 자행한 일제의 식민통치에 연인원 200만명이 참여한 1919년 3 .1운동에서 의롭고 애국심이 투철한 호남인들도 적극 참여했으며 장성지역에서는 삼서면의 소룡리와 북이면의 모현리 그리고 장성읍의 만세시위가 가장 두드러졌다.

그리고 독립을 쟁취하려는 애국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니 산상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으니 장성지역의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의로운 장성인들은 신간회를 통한 독립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끈질기게 투쟁을 계속했고 이러한 전통은 해방이후에 전개된 분단과 독재에 저항하는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도 계속되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도하였고 그 중심을 이룬 호남지방과 호남인들은 방방곡곡에서 강인한 민주화투쟁을 전개한 역사발전을 견인했으니 그것은 장성지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한말의병항쟁의 계승·발전이라 볼 수 있다.


이상식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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